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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에 선 정부” — 500조 원 약속, 국회 동의 생략 논란
  • 최득진 주필
  • 등록 2025-11-06 14:32:03
  • 수정 2025-11-06 14: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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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관세 MOU ‘역대급 성과’라던 정부, 정작 문서도 공개 안 해
  • 500조 원 국민 부담 합의, 헌법 제60조 무시한 ‘위헌적 발상’ 논란
  • 대통령 “국회와의 협력 강조”… 그 말은 ‘무의미한 선언’이었나

인포그래픽=이노바저널 AI 삽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오만한 통치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한미 관세 MOU’의 재정적 부담이 약 5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초대형 재정 합의임에도 정부는 헌법이 명시한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월 6일 국민의힘(최보윤 수석대변인 논평)은 다음과 같이 강력이 비판하고 나섰다.


“시간이 없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발상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관을 배제한 통치 행위로 비판받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흔드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베일 속의 합의: ‘성과’라면서 실체는 불분명


국가 간 협약, 특히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협정에서는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이 민주적 정당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 관세 MOU는 정부가 “역대급 성과”라 자평했음에도 그 근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 정부는 “약 3,500억 달러(500조 원) 현금 투자와 상한 설정”을 주장하지만, 미국 측은 “총 9,500억 달러 투자, 반도체 관세 제외, 농산물 시장 100% 개방”을 언급했다. 수치와 조건이 이처럼 상이한데도 정부는 합의문, 서명문서, 팩트시트 등 공식 자료를 단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 지금 ‘500조 원짜리 합의’를 종이 한 장 없이 믿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깜깜이 합의’에 대한 불신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헌법 절차 회피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뒤집힌 약속: 공적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정부


정부는 불과 두 달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외교부 장관과 국무총리의 입을 통해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면 국회에 와서 설명하고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국민을 향한 명백한 헌법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실과 여당은 입장을 뒤집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공적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태도는 헌법 절차 회피를 위한 자기부정이자 국민 기만이다.


더욱이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48차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정부의 협력을 강조했다”는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국회의 동의권을 무시한 채 500조 원 규모의 재정 합의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 발언이 ‘무의미한 선언’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협력’을 말하면서 동시에 헌법이 정한 절차를 생략하려는 정부의 행태는, 스스로 한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이중적 통치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적 발상: 헌법 제60조를 무시한 위험한 선례


헌법 제60조 제1항은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는 행정부의 독단적 재정 결정을 막고 국민의 세금을 통제하기 위한 헌법상 견제 장치다.


정부가 밝힌 투자액 3,500억 달러(약 500조 원)는 **내년도 정부 예산(약 728조 원)의 69%)**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이를 두고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과 헌법의 명문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MOU가 조약이 아니므로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형식적 궤변에 불과하다. 국제법상 MOU라도 실질적으로 재정 의무를 발생시키면 조약으로 간주되며, 당연히 국회의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이번 결정은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의 원리를 훼손하는 ‘위헌적 행정 독주’로 평가된다.


국민은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하는가


정부의 이번 행태는 세 가지 단계의 문제를 보여준다.


  1. 투명성의 부재 — 합의 내용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2. 공적 약속의 파기 — 국회 앞에서 한 약속을 스스로 뒤집었다.

  3. 헌법 절차의 무시 — 국회의 동의권을 생략하려 했다.


이 모든 과정의 끝에는 국민에 대한 설명도, 책임도, 문서도 없다. 그저 “성과를 믿어 달라”는 정치적 언어만 남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체결된 협약이라면, 그 결정은 반드시 국민이 세운 국회를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차이자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결국 국민의 물음은 이 한마디로 모인다.


“국민이 도대체 뭘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까?”


“협력”을 말하면서 “검증”을 거부하는 정부, “성과”를 외치면서 “근거”를 숨기는 권력.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라면, 이 문제는 단지 외교 문서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의 존엄과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500조 원이 아니라 단 1원이라도, 국민의 돈이라면 그 결정은 국민의 대표 기관을 통해 통제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이 스스로 지켜야 할 헌법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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