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특집]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IT 강국의 치명적 약점 드러나... 국가적 재난 속 피해 규모 '가늠 불가'
  • 최득진 주필
  • 등록 2025-10-01 09:10:09
기사수정

인포그래픽=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노바저널 AI 이미지 디자인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우며 디지털 행정을 앞세워온 가운데, 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국가 전체를 마비시킨 초유의 재난으로 기록되고 있다.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정부의 디지털 인프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디지털 아포칼립스'로 비화된 이 사건은 국민 생활 전반을 혼란에 빠뜨렸다.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며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피해 규모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화재로 국가가 직면한 엄청난 재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오랜 기간 쌓인 구조적 문제의 폭발로 보인다.


화재 발생 경위: 리튬 배터리 이전 작업 중 '인재' 


화재는 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 도중 발생했다. 작업자 13명이 배터리 전원을 차단하던 중 하나의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됐고, 순식간에 확산됐다. 소방당국은 약 242명의 인원과 67대의 차량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으나, 서버실 특성상 물 사용이 제한돼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배터리 384개가 전소됐고, 96개의 핵심 시스템이 직접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이 작업의 부실함에서 드러난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배터리 이전은 비전문 업체와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된 환경에서 이뤄졌다. 이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관리 체계의 허술함을 상징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화재 취약성은 이미 알려진 바인데, 서버와 같은 층에 배치된 상태에서 이전 작업이 이뤄진 점 자체가 재난을 초래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게다가 배터리는 LG 에너지 솔루션 제품으로, UPS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의 안전성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근본 문제점: 노후화된 시설과 재난 대비 미비


이 화재는 국정자원의 구조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첫째, 장비 노후화다. 2024년 감사원 감사 결과, 국정자원의 장비는 4~7년 사용 후 고장률이 급증하는데도 내구 기간을 6~9년으로 연장해 교체를 미뤘다. 이로 인해 일부 장비의 고장률이 100%를 초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IT 강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국가 핵심 인프라가 이렇게 방치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재난 대비 시스템의 부실함이다.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 외에 광주와 대구 센터를 백업으로 두고 있지만, 화재 시 실시간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2022년) 때부터 UPS 화재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 점은 정부의 학습 능력을 의심케 한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안전 프로토콜이 지켜지지 않은 '인재' 측면이 크다. 비전문 인력 투입과 작업 환경의 미비는 국가 인프라 관리의 총체적 실패를 상징한다.


셋째, 중앙 집중식 구조의 위험성이다. 국정자원은 647개의 정부 시스템을 관리하며, 국민 생활과 직결된 데이터를 다룬다. 이곳이 마비되면 행정, 금융, 우편, 교통 등 전 분야가 영향을 받는다. 분산 백업이 있음에도 대전 본원이 '심장부' 역할을 하다 보니, 한 곳의 화재가 전국적 재난으로 확산됐다. 이는 디지털 행정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 규모: '디지털 블랙아웃'으로 국가 마비... 복구까지 1개월 소요 예상


화재로 647개 정부 시스템이 중단됐으며, 이 중 436개는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인터넷 기반 서비스, 211개는 내부 네트워크다.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 복구에는 최대 1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국민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체국 택배 지연, 금융 거래 중단, 여권 발급 지연, 모바일 신분증 확인 불가, 119 문자 신고 불능 등 일상생활이 마비됐다. 공항에서는 물리적 신분증을 요구하며 혼란이 가중됐고, 부동산 거래나 세금 납부도 수기 처리로 전환됐다.


피해는 경제적·사회적 파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정사업 금융 서비스 중단으로 소상공인들의 결제 지연이 발생하고, 농업·환경 관련 시스템 마비로 정책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551개 비피해 시스템부터 복구 중이지만, 10월 1일 오전 기준 복구율은 13.4%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며 전화위복을 강조했지만, 국민 불신은 커져만 간다. 데이터 자체 소실은 없으나, 시스템 재구축 비용과 사회적 손실은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직 가늠조차 어렵다.


앞으로의 과제: 근본 개혁 없인 재난 반복될 터


이번 화재는 IT 강국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정부는 경찰 수사와 합동 감식을 통해 원인을 규명 중이지만, 표면적 대처에 그쳐선 안 된다. 노후 장비 교체, 전문 인력 확보, 분산 백업 강화, 리튬 배터리 안전 기준 강화 등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디지털 재난'이 국가를 덮칠 수 있다. 국민은 더 이상 이런 혼란을 감내할 수 없다.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한다.

0
유니세프
국민신문고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